홈쇼핑에서 400억 원치 갈비 팔고 지금은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 단골식당 운영한다는 MBC공채 개그맨

"목숨을 건 탈북, 이후 명문대에 진학, 그리고 연예계 진출, 그리고 사업 성공.

인생이 이렇게만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2번에 걸쳐 40억 사기, 자살까지 생각, 그리고 이혼

안타까운 일도 있었죠. 그러나 인생이 그렇게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연 300억 원대 매출의 성공적인 사업, 베트남에 진출 성공"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탈북자 전철우의 파란만장한 인생입니다. 현재는 한국에서의 사업도 모자라 베트남까지 진출해 한식을 널리 알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 RedFriday에서는 그의 인생과 집념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북한 엘리트 출신의 목숨 건 탈북

재치 있는 입담으로 유명한 전철우이지만 사실 그는 북한 엘리트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군 장성, 어머니는 대학교수였으며, 북한 최고의 명문 공대인 김책공업종합대학 기계제작학부를 졸업한 재원이었죠. 그는 이후 국비 지원을 받아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3년 반을 수학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20년 이상 북한에서 거주하다 독일에 간 뒤 많은 문화 충격을 경험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풍경뿐만이 아니라 동독 남녀가 키스하는 것도 처음 봤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물들 것을 경계한 북한 당국은 끊임없이 그를 감시했다고 하네요. 극장에 가는 것, 외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타 지방에 가는 것, 외국 여성과의 연애 등 많은 것을 금지 당했습니다. 

그는 북한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재에 대한 불만도 싹트기 시작했죠. 결국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11월 10일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했습니다. '동독 독일인들이 워낙 키가 커 자신이 안 보였기에' 넘어 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후 한국 대사관으로 진입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2. 승승장구했던 한국 초기 생활

그는 전공을 살려 한국에서도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바로 1991년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재치 있는 입담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1994년 MBC 개그맨 공채에 합격했고 '평양 놀새'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97년 5월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유명 개그맨 최양락, 김미화, 이봉원 등의 도움으로 서울 남영동 지하 2층에 30평대의 작은 냉면집을 연 것이었습니다. 이는 바로 '전철우 고향냉면'의 시조였습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습니다. 개업 2년 뒤에는 체인점이 무려 50개 이상이었습니다. 


3. 형제처럼 믿었던 지인에게 첫 번째 사기당해

그러나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돈 있는 사람 옆에는 꼭 사기꾼이 모이게 마련이죠. 한 지인을 통해 훗날 자신에게 사기를 친 A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A는 밥을 한 번 먹자고 하며 전철우에게 접근했습니다. 수수한 외모의 A는 소주를 한 잔 마시더니 자신이 고아라며 고생했던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전철우에게 자신이 형제를 갖는게 꿈이라고 말하고 헤어졌다고 하네요. 전철우는 A를 며칠 있다 또 만났습니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A는 전철우의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6개월이 지나니 A는 가족들까지 데리고 와서 살았습니다. 오히려 전철우는 다른 곳에 가서 살게 되었다고 하네요.

사업은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방송계의 러브콜까지 닥쳐오는 상황에서 A는 전철우에게 '방송에 집중하라'고 조언했고 자신이 사업을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A는 회사의 회계장부에 손을 댔습니다. 사실 A는 빚쟁이에 쫓겨 부산에서 야반도주를 한 사람이었는데요. 전철우의 돈으로 빚을 다 갚은 것이었죠. 첫 번째 사기였습니다.


4. 조폭에게 두 번째 사기

이 사건이 있고 전철우에게는 해운대 건달인 B가 접근했습니다. B는 전철우에게 'A와 있으면 무조건 망한다. A는 사기꾼이다'라고 하며 전철우를 은행마다 데려갔습니다. 은행에서는 'A가 빚지고 달아난 사람인데, 얼마 전 빚을 다 갚았다'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B는 A를 전철우의 곁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A의 자리에 다시 B가 몸담고 있는 건달 조직이 들어 앉아 사기를 쳤다고 합니다. 2~3년에 걸친 두 번의 사기로 40억 정도를 잃었다고 합니다.


5. 행복을 꿈꾼 결혼생활, 그러나..

그러나 사업의 실패보다 더 힘든 것은 가정사였습니다. 그는 2000년 일반인 여성 K씨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부인, 그리고 장모와의 불화로 4년 만에 이혼하게 되었죠. 당시에는 이 사건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귀순스타 룡호씨'라는 에피소드를 방영 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에피소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외국에서 유학하다 한국으로 귀순한 북한 출신 룡호씨가 방송 출연도 하고, 책도 내고, 사업적으로 성공해 결혼한 후 식당업으로 번 돈을 처갓집 식구들의 무리한 요구로 날리게 되자 이혼을 시넝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PD는 '드라마 내용은 새터민 몇 명의 사례를 수집해 각색한 것으로 실화가 아니다"라며 부인했지만 K씨가 직접 시청자 게시판에 해명 글을 올리며 드라마가 실제 상황이 되어버렸죠. 


6. 다시 일어선 전철우

전철우는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2005년 다시 국밥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국밥집도 대박이 나며 재기에 성공했죠. '전철우의 고향마을'은 2,900원짜리 국밥으로 유명세를 탔으며 곧 50개 이상의 체인이 생겼습니다. 연 매출은 80억에 달했죠. 또한 홈쇼핑에도 진출했습니다. 특히 2005년 2월 출시한 항아리갈비는 2년 넘게 판매되며 400억이 넘는 수익을 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국 마트에 식품을 납품하고 있으며 인터넷에서 브랜드 식품을 판매했습니다. 또한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식품을 수출하기도 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7. 두 번째 결혼 그리고 득녀까지

전철우는 2007년 재혼했습니다. 신부는 한국무용을 전공한 8세 연하의 여성이었습니다. 이들은 지인의 소개로 첫 만남을 가졌으며 6개월의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죠. 이후 딸 전희주양을 낳았습니다. 


8. 베트남 진출 

전철우는 한국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큰 한국 음식 제조 유통 기업'이 되고자 2017년 베트남으로 진출했습니다. 베트남을 동남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은 것이죠. 그는 베트남 진출 직후 하노이에 즉석식품 가공공장을 세웠습니다. 이후 2018년 11월에는 식당도 열었습니다. '현지화된 한식'에 한인 뿐만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발길도 잦아졌습니다. 현재 대형 쇼핑몰로부터 입점 제안도 받고, 프랜차이즈를 하면서 점포를 받고 싶다는 문의도 부쩍 늘었다고 하네요. 특히 베트남의 영웅 박항서 감독이 전철우가 운영하는 식당의 단골손님이라고 알려지며 큰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현재 그는 베트남의 한인타운 미딩에 있는 고급 아파트 골든팰리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한인들이 선호하는 아파트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요. 한인이 경영하는 병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지하에는 규모가 큰 한국 마트가 있습니다. 이곳 지하 1층에는 전철우가 오픈한 식당 '맛있는 주방&고향각'이 있기도 합니다. 이곳의 월세는 1,100달러에서 1,500달러 선이라고 합니다. 

전철우는 피나는 노력, 그리고 성공하겠다는 집념으로 요식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모자라 지금은 K푸드의 선봉장으로 베트남에 진출했는데요. 그는 사실 자신의 성공 비결을 '머리가 안 좋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힘들었던 것을 잘 까먹고 앞만 보고 가다 보니 올라가 있었다는 것이죠. 또한 사람이 너무 섬세하면 상처 같은 것을 잘 못 잊는다면서 자신은 머리가 안 좋아 성공했다고 밝히며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는 비상한 두뇌를 가진 전철우의 겸손한 발언이겠죠? 실패를 빨리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특유의 재치로 전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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