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명 정원인 비행기에 승객을 단 한명도 태우지 않고 거의 매일 운항한 이유는?

 

 

총 124명을 태울 수 있는 비행기에 승객을 단 한명도 싣지 않고 일주일에 6일 그리고 몇 달 간 운항한 항공사가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빈 항공기를 운항하면서 당시 환율로 약 30억원이라는 적지 않는 비용을 감수하였습니다. 도대체 이 비행기는 왜 승객을 실을 수 있지만 단 한 명도 없이 빈 상태로 페리(Ferry) 비행을 했을까요? 페리(Ferry) 비행이란 다른 공항으로 이동해 승객을 태우거나 정비를 위해 승객이 없이 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해당 항공사는 BMed(British Mediterranean Airways)라는 곳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의 자회사였으나 지금은 영국항공(British Airways)에 인수된 곳입니다. 승객이 없는 유령 비행편은 런던에서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로 가는 항공편이 중단되면서 벌어졌습니다. 타슈켄트로 가는 항공편이 중단되면서 대신 인근의 카디프로 빈 비행기를 보낸 것인데요. 그렇다면 BMed에서는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런던 히드로공항은 2015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제선 이용객이 이용한 곳으로 항공편이 분 단위로 이착륙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교통량 때문에 새로운 항공편의 신규 취항이 매우 어려운데요. 항공 업계 관계자가 소위 말하는 '새로운 슬롯(Slot) 확보'가 매우 어려운 공항 중 하나입니다. 슬롯이란 항공사가 특정 공항에 특정한 날짜, 시각에 출발과 도착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을 말합니다. 이러한 슬롯은 한번 정해지면 해당 항공사가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기득권이 유지되는데요. BMed의 타슈켄트 행 항공편이 중단되니 다른 항공사들이 비어있는 이 슬롯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운항기가 중단되면 하늘의 별 따기인 히드로 공항의 슬롯을 다른 항공사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항공사는 어렵게 얻은 슬롯의 사용 실적이 80% 이상일 경우에만 해당 슬롯의 권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BMed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다음 시즌의 슬롯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근거리인 카디프로 일주일에 여섯번씩 승객 없이 비어있는 비행기를 운항시킨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황금 슬롯이 있습니다. 제주 노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릴 정도로 국내외 항공사들이 선호하는 노선입니다. 항공사마다 비행기를 투입할 여력은 있지만 제주공항의 슬롯이 없어 못 띄운다고 하네요. 이처럼 공항 수용 능력이 커지지 않는 한 해당 시간에 운항 할 수 있는 항공기 수는 정해져 있으며 승객들이 선호하는 시간의 슬롯이 많을수록 해당 항공사의 수익은 커집니다.  

 

이 때문에 항공사 간 슬롯 교환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현재 대한항공은 진에어를 아시아나는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계열사로 두고 있습니다. 대한항공과 진에어는 스롯 교환을 6회, 아시아나는 에어서울과 11회를 실시하였는데, 승객들이 선호하는 시간대를 저비용 항공사들이 받았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진에어와 에어서울로부터 넘겨받은 슬롯을 거의 운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항공 슬롯은 항공사의 영업에 주요한 자산인 만큼 재산권의 성격이 강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이를 불공정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했지만, 슬롯을 양도하는 것은 계열 항공사의 영업에 유리한 측면이 있기에 국토부를 포함한 관계 기관이 더욱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