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를 아시나요? 요즘 가장 핫한 디자이너 중의 한 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는 패션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건축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건축학도이죠. 그는 건축을 공부하다 한 유명 건축가와 명품 패션 브랜드의 협업을 본 후 패션에 눈을 뜨게 됩니다.
2002년 래퍼 칸예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2009년 펜디의 인턴으로, 2011년 칸예 웨스트 앨범의 아트 디렉터로 종횡무진하던 그는 2012년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게 됩니다.
물론 패션 브랜드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데요. 직접 디자인한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티셔츠에 프린팅만 더해 비싼 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입니다. 5만 원짜리 티셔츠에 프린팅을 더해 50만 원에 팔았습니다. '사기꾼'이라는 비난 뒤에 이 브랜드는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패션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던졌죠.
이를 발판 삼아 2013년 하이패션 브랜드 오프 화이트를 론칭했습니다. 예전에는 돈 많고 패셔너블한 사람들이 입는 '하이엔드 패션'과 일반인들의 '워크 웨어' 혹은 '스트리트 웨어'만 존재했다면 오프화이트는 이 이분법을 없애버렸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도 '하이엔드 스트리트 웨어'를 입게 된 것이죠.
그가 하는 것은 유행이 되었습니다. 버질 아블로와 협업하면 '무조건 뜬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실제로 버질 아블로, 혹은 오프 화이트와 협업하면 엄청난 가격의 리셀가가 형성되었습니다.
곧 이 스트리트 패션의 황제가 이케아와 협업해 만든 제품이 판매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제품들 또한 엄청난 리셀가가 예상되는데요. 어떤 제품인지 한번 볼까요?
먼저 영수증 모양의 러그입니다. 이 러그의 가격인 599크로나가 영수증에 인쇄되어 있습니다. 러그라기 보다는 하나의 '레디메이드 아트'인 것 처럼 보입니다.
TEMPORARY라는 단어가 적힌 벽 시계입니다. TEMPORARY는 '일시적인, 임시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하는 시계에 이런 단어를 붙인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영속성과 반어적 의미를 가지기도, 지금 1분 1초가 가지는 '임시성'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다음은 "SCULPTURE(조각품)"이라는 프린팅이 되어있는 방수 종이가방입니다. 이 디자인은 사실 이케아의 유명한 초록색 장바구니, FRAKTA의 다른 버전입니다. 이 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품과 프린팅의 부조화가 눈에 띄네요.
액자처럼 보이는 이 상품은 조명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회화인 <모나리자>를 재현한 것이죠.
HOMEWORK(숙제)라는 프린팅이 눈에 띄는 이 플라스틱 박스는 공구함입니다. HOME(집) WORK(일)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언어유희를 한 것 같네요.
이외에도 매트리스, 베개, 테이블 등의 상품이 출시될 예정입니다.
이 상품들을 보니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 떠오르는데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을 프랑스어로 적어놓은 작품이죠.
이 작품은 우리의 상식적인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요. 버질 아블로와 이케아의 협업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사물과 관습화된 사고에 이의를 제기하고 뜻하지 않은 해석을 상품 속에 넣어 놓는 것이죠.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 상품의 발매 계획은 없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일부 매장에서 한정적으로 판매할 것이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