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세까지 못해봤다고?? 당대 최고의 팝아티스트에 대해 몰랐던 사실 7가지

'팝아트'라고 하면 어떤 예술가가 떠오르나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작가를 떠올릴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 작가는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의 한 명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으며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통하는 앤디 워홀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오늘 RedFriday에서 알려드립니다.

 

1. 뉴요커가 아니다?


앤디 워홀은 뉴욕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자신도 뉴욕에 오래 살았지만 사실 그는 뉴욕 출신이 아닙니다. 그는 피츠버그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님은 슬로바키아사람입니다. 지금 앤디 워홀의 묘지와 그의 개인 미술관도 피츠버그에 있습니다.

피츠버그에 위치한 The Andy Warhol Museum / 출처 : warhol.org

 

 

2. 독실한 신앙심


워홀은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랐고 신실한 가톨릭인이었습니다. 매주 두 세번 미사에 참석하고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했으며 늘 십자가를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교황을 만난 앤디 워홀 / 출처 : americamagazine.org

 

 

3. The Factory


앤디 워홀의 'Factory'라고 불리는 작업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뉴욕에 있는 그의 '공장'은 1962년에서 1984년까지 세 번이나 옮였습니다. 이 공장은 지성, 예술, 성적 호기심을 위한 장소였으며 이곳에는 예술가, 포르노 스타, 드랙퀸(여장 남자), 음악가, 마약중독자 등이 초대되었습니다. 이곳에 온 유명인들로는 데이비드 보위, 믹 재거, 마돈나, 존 레넌, 오노 요코 등이 있습니다.

출처 : thecut.com 

 

 

4. 58세에도 숫총각이었던 워홀


성적인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는 워홀의 작품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작가가 58세까지 숫총각이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섹스는 침대 위보다 영화나 책으로 볼 때 더 흥분된다. / 출처 : quotefancy.com 

 

 

5. 페미니스트의 총


벨러리 솔라나스라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는 자기가 쓴 극본 Up Your Ass를 사용해달라고 워홀에게 요구했으나 워홀은 이에 무관심했습니다. 이후 솔라나스는 워홀이 극본을 분실했거나 훔쳤다고 주장하게됩니다. 이로 인해 워홀을 끈질기게 찾아갔고 결국 워홀에게 총 세 발을 쏘았습니다. 그는 이로 인해 다섯 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하게 되었고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워홀의 작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됩니다.

출처 : time.com

 

 

6. '깊이에의 강요'가 없었던 예술가


앤디 워홀은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나에 대해 전부 알고 싶으면 그저 내 그림과 영화 그리고 내 모습의 표면만을 보면 된다. 거기에 내가 있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이며 시각 예술 전반에서 혁명적 변화를 주도한 이 예술가는 미술의 심오함을 거부했습니다.

출처 : izquotes.com 

 

 

7. 레스토랑을 열고 싶었던 워홀


1950년대에 자동판매기로 음식과 음료를 파는 컨셉(Automat)에 매료된 앤디 워홀은 비슷한 스타일의 식당을 열고 싶어 했으며 그 이름은 "Andy-Mat"로 지었습니다.

1900년대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에 있었던 Automat / 출처 : ea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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