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 윈난성 쿤밍시에서는 아파트 14개 동을 한꺼번에 폭파시키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건설사의 재정 문제로 공사가 7년 동안 중단되었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수요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중국 하이난 성에서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건물을 먼저 지었다는 이유로 아파트 세 개 동이 폭파된 적도 있었죠. 광둥성의 한 아파트 또한 불법으로 건축하다 건설 노동자 8명이 숨지며 아파트가 폭파 철거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1. 중국의 아파트 폭파, 남의 일이 아니다?
이를 본 전 세계인들은 '어떻게 다 지은 아파트를 폭파할 수가 있냐'는 반응이었는데요. 허가도 받지 않고 건축물을 올리는 중국 건설사의 행태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법에 따라 심의를 통과받지 않은 아파트에 공사 중지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왕릉 조망 해쳐' 건설 중단 명령
현재 인천광역시 서구의 당하동, 마전동, 불로동, 원당동 일대에는 2기 신도시인 '검단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2021년 6월부터 일부 아파트는 입주를 시작했으며, 2022년과 2023년에도 많은 세대가 입주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대방건설의 '디에트르 에듀포레힐', 대광건영의 '대광로제비앙, 금성백조의 '예미지트리플에듀'입니다. 이 아파트는 각각 1,417세대, 736세대, 1,249세대인데요. 이를 합하면 총 3,402세대입니다.
이 세 개의 아파트 단지에 제동을 건 곳은 바로 문화재청이었습니다. 문화재청에서는 3개 아파트 단지 공사 현장 근처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김포 장릉이 위치해 있다고 하는데요. 문화재 보호법상 문화재 반경 500 미터 내에 20미터 이상 건물을 지으려면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3개 건설사는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지 않고 공사에 들어갔다는 것이죠.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단지들이 왕릉의 조망을 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아파트 공사 전에는 장릉에서 정남 쪽으로 계양산이 보였는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에 가려져 있는 것이죠.
사실 장릉 쪽으로 200미터 더 가까운 곳에도 아파트 단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장릉삼성쉐르빌'입니다. 장릉삼성쉐르빌은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15층 높이로 최대한 왕릉을 가리지 않도록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도록 지은 후 2002년 준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김포 장릉, 어떤 곳이기에?
김포 장릉, 과연 어떤 곳일까요? 김포 장릉은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있는 추촌왕 원종과 부인 인헌왕후 구 씨의 무덤입니다. 김포 장릉 북쪽으로는 파주 장릉이 있는데요. 이는 원종의 아들인 인조의 무덤입니다. 파주 장릉에서 정남 쪽으로 내려오면 파주 장릉~김포 장릉~계양산으로 이어지는 조경이 특징인데, 이 아파트는 김포 장릉~계양산의 가운데 위치해 조경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죠.
김포 장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유네스코에서는 '조선 왕릉 완충 지역 내 개발이 통제되는 것' '풍수 원칙을 적용하고 자연경관을 보존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고 있는데요. 이에 만약 아파트가 계획대로 지어진다면 문화유산 등재기준을 충족한다고 보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취소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사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요?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영국의 '리버풀, 해양 무역도시'는 18~19세기 영국의 부두 건설과 항만 경영의 기술을 보여주며 세계 무역 항구도시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러나 리버풀 부두 개발이 이어지며 결국 등재 17년 만에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되고 말았죠.
5. 이미 다 올라간 아파트.. 어쩌나?
문제는 이 아파트가 거의 다 지어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3개 건설사 모두 이미 아파트 꼭대기층까지 골조 공사를 끝내고 내부 마감 작업 중인 상태입니다. 입주가 내년 6월에서 9월인 만큼 이제 막바지 공사에 들어간 것이었죠. 그러나 문화재청에서는 이 세 개 건설사에 다음 달부터 공사를 중단하라고 통보했고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문화재 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청 허가를 받지 않고 건물을 짓는 경우 공사 중지 또는 원상 복구 명령이 가능한데요. 이에 책임 공방에 따라 입주가 무기한 연기되거나 최악의 경우 건물을 부수야 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6. 건설사는 억울하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아파트 용지를 매각한 인천도시공사가 택지개발에 대한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했고, 당시 허가가 났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는 인허가기관인 인천서구청의 경관심의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화재청 관계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2014년 신청한 현상변경 허가 신청서는 '택지개발'에 대한 내용뿐이었고, 아파트 건설에 필수적인 설계도, 입면도, 배치도, 건설사 이름 등에 관한 사항은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2019년 아파트 사업계획 승인이 이뤄졌는데, 이때 인천도시공사나 서구청, 건설사가 한 번 더 검토했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